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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
大東亜共榮圈
공식 언어 일본어, 영어
의장 일본 내각총리대신
역사 1943년 11월 6일 -

대동아공영권(大東亜共榮圈,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GEACPS)은 1943년에 설립된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안전 보장에 대한 국제 기구이다. 1943년 11월 6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 만주국, 버마, 인도, 중화민국, 태국, 필리핀 정상들의 대동아회의에서 설립되어, 매년 11월에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전 보장 확립과 회원국들 간의 정치, 경제, 문화, 안전 보장 등 폭넓은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역사

Greater East Asia Conference

1943년 11월 5일 대동아회의에 참가한 각국 수뇌들

'대동아공영권'의 용어 자체는 분석 철학자 기요시 미키가 제창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노에 후미마로 일본 총리가 1938년 12월 22일 동북아시아에 한정해 제창한 동아신질서(東亜新秩序)라는 지리적으로 더 좁은 범위에 대한 개념이 영향을 주었다.

통합된 아시아의 개념은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일본의 외무대신직을 지낸 군 사상가인 아리타 하치로 장군에게서 비롯된 일본 육군의 개념을 기반에 두었다. 육군은 대동아공영권이 먼로주의, 특히 루스벨트 따름정리를 아시아에 대응시킨 것이라 주장했다. 아시아의 지역들은 일본에게 미국에게 있어서의 라틴 아메리카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고노에 후미마로는 1940년에 일본, 만주국,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일부를 아우르는 대동아공영권을 기획했으며, 그것은 서구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져 번영과 평화, 자유를 누릴 아시아 국가들의 '공영'을 위해 새 국제 질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대신은 1940년 8월 1일의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대동아공영권의 개념을 밝혔다. 대동아전쟁 이전 서구의 식민통치를 당하며 많은 주민들이 일본에 동감하던 대동아공영권 내부의 다른 국가들은 전쟁 초기에 식민통치에서 벗어났고, 대동아공영권의 나머지는 이미 일본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일본을 제외한 회원국들끼리의 협력이나 권한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대동아공영권의 설립이 큰 어려움 없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대동아공영권은 1943년 11월 5일-6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대동아회의에서 일본, 만주국, 버마, 인도, 중화민국, 태국, 필리핀 7개국의 정상들이 서구 국가들에 대항하는 정치, 경제적 협력 관계에 대한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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