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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4개국 점령 지역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7월 26일의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국은 공동으로 일본 열도를 분할 점령하여 통치한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계획은 11월로 예정되었던 몰락 작전을 통해 연합군이 일본 본토를 상륙 점령하면서 실행될 예정이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또한 일본이 항복하지 않으면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멸'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의 포츠담 선언 또한 발표되었다. 일본 내각에서는 포츠담 선언의 묵살을 결정하고, 이에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으며, 소련도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만주를 침공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13일, 일본 내각회의에서는 육군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결정하고, 일본은 중립국 스위스를 거쳐 연합국들에 수락 의사를 전했다. 8월 14일, 쇼와 천황은 도쿄 고쿄에서 종전 조서를 녹음했다. 8월 14일 늦은 밤, 도쿄에서 궁성 사건이 벌어졌다. 육군성과 근위사단 장교들을 주축으로 벌어진 쿠데타에서, 주도자 하타나카 겐지 소좌는 근위제1사단장을 살해하고 사단장 명령을 위조하여 근위제2연대 병력으로 고쿄를 점령했다.

내각회의에서도 항복에 반대했던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대신은 이에 쿠데타 병력을 지지하며 행동에 나서고, 육군성과 관동군이 쿠데타에 합류한다. 8월 15일, 고쿄와 일본방송협회 사옥을 점령한 쿠데타군에 의해 종전 조서는 방송되지 못하고, 아나미는 쿠데타를 통해 스즈키 간타로 내각을 전복시키고 일본의 총리직에 올라 쇼와 천황에게 항복하지 말 것을 설득한다.

일본은 이후 본토 결전에 대비해 병력을 본토로 징발하여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차후의 작전을 위해 연합군은 더 이상의 원자폭탄 투하를 중지하지만 일본 본토 공습은 계속 이어지고, 9월에는 소련군이 홋카이도에 상륙해 일본군과의 전투를 개시한다. 11월 1일, 연합군은 몰락 작전을 개시한다. 올림픽 작전으로 연합군 14개 사단이 규슈에 상륙해 일본의 절망적인 저항에 부딪힌다. 규슈 전투에서 연합군의 원자폭탄 투하, 일본의 가미카제 공격과 수많은 일본인들의 옥쇄로 수십만의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이와 동시에 한반도와 일본 열도 북부에서 남하하는 소련군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던 일본은 곧 항복을 결정하게 된다.

일본은 늦은 항복에 대해 가혹한 대가를 치른다. 일본 본토 공격에 참가한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국은 독일에서와 같이 한반도와 일본 본토를 분할하여 직접 통치하게 된다. 일본의 정부와 군대는 해산되고, 쇼와 천황을 포함한 일본의 주요 지도자들도 모두 구속된다. 한반도는 4개국의 분할 군정을 거쳐 중립국으로 독립하나, 일본에서 소련과 나머지 연합국들 간의 협의는 결렬된다. 1949년, 냉전의 시작과 함께 일본은 남쪽의 일본민국과 북쪽의 일본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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